안녕하세요, 린입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어요.
이제야 정말 가을임을 실감하고 있네요.
어느덧 레터를 발송한지 벌써 14주차가 되었고요.
시간이 정말.. 빠르지 않나요? 휴
아, 제가 작성한 지난 레터에 건네주신 말들은 모두 잘 받았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따듯하게 위로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찌나 감동이던지..
예상치 못한 부분을 집어주셨던 분도 계셨고요,
더욱더 힘을 내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저희 옥구슬 프로젝트 팀원들 모두 한줌의 소중한 피드백에 감격했답니다.. )
오늘은 꽁꽁 숨겨왔던, 제가 오랜기간 좋아했던 인물을
한 명 소개해드리고자 하는데요,
아마 흥미롭게 읽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오늘의 레터, 시작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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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Andy warhol)은 1960년대 미국에서 팝아트를 이끌었던 선구자입니다. 예술을 상업과 일치시킨 아이콘적인 인물이기도 하죠.
그의 가장 유명한 명언 중엔 이런 말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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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에 대해 전부 알고 싶으면 그저 내 그림과 영화, 내 모습의 표면을 보면 된다.
거기에 내가 있다.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떠신가요. 내면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강한 워딩이 인상적이지 않나요? 표면성을 중시한 발언으로, 역시나 일각에서는 이를 매우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는데요. 그의 예술세계 또한 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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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판을 제작해 찍어내는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어내듯 대량생산해낸 워홀만의 방식. 가끔은 너무나 구하기 쉬운 상품 그 자체를 미술관에 전시하기도 합니다.
팝아트가 미술시장을 이끌기 전, 작품의 유일성 혹은 작가의 고유성을 중시했던 고상한 세계에서의 앤디워홀의 등장이란 그야말로 가십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겠죠. 앤디워홀은 소비되기 쉬운 이미지를 내세워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유명세를 이끌어 결국 큰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 시절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전으로 시작된 대량생산의 시대를 잘 묘사해 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시대를 잘 타고났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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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이 크게 성공을 거두었던 1960년대 미국의 뉴욕은 마약, 파티, 로큰롤 등 사치와 향락이 가득한 혼란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앤디워홀은 한 사교파티에서 ‘그녀’를 만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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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팩토리걸(Factory girl) 속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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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명인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자유롭게 춤추는 그녀의 모습은 워홀을 한눈에 반하게 만들었어요. 케임브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모델이 되기 위해 뉴욕으로 온 그녀의 이름은 ‘에디 세즈윅’. 앤디워홀은 이미 뉴욕을 주름잡던 유명 예술가였고, 두 사람은 파티를 계기로 인연을 이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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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팩토리걸(Factory girl) 속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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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 그녀를 자신의 작업실인 ‘팩토리(Factory)’에 초대하면서 에디는 팩토리의 일원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수많은 작업물을 만들어냈죠. 당시 워홀은 파리, 밀라노, 스톡홀름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개인전을 열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그녀를 함께 동행하여 참석하였고, 이때부터 공공연히 그의 ‘뮤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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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의 권유와 그녀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이후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금발로 염색한 뒤 짙은 스모키 화장과 함께 볼드한 액세사리를 착용한 스타일을 고수했는데, 이는 그녀를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에디는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신문을 장식하고 그녀를 필두로 내세운 영화는 전석 매진되는 등 인기가 날로 갈수록 높아졌죠. 시대의 ‘잇걸’이 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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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에 빠졌어요. 저는 그저 미친 사람이자 흐트러진 재앙의 인간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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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일원들과 함께 모두에게 주목받는 화려한 삶 속에서 그들은 계속 찬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그의 ‘뮤즈’가 아니라 그저 노리개 같은 ‘인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면서 한 켠에 있던 작은 회의감이 그녀를 덮치게 됩니다.
결국 사태는 벌어졌어요.
미술이 아닌 음악 씬에서 한창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밥 딜런’을 만난 에디 세즈윅은 앤디워홀과는 다른 그의 예술세계에 매료됩니다.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인데요. 이를 계기로 에디 세즈윅과 앤디워홀의 관계는 점점 틀어지고, 에디는 ‘팩토리’에서도 버려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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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나락이었어요. 술과 마약에 빠져 망가져 버린 그녀를 불러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결국 파티와 재활센터를 전전하던 그녀는 1971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마약 중독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동성의 애인이 있었던 앤디워홀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시절 누구보다 자신을 매료시켰던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에디 세즈윅일 것. 그 감정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어요.
앤디워홀의 ‘뮤즈’이면서 60년대 패션아이콘으로 시대를 풍미한 에드 세즈윅.
그녀의 스타일은 아직까지도 회자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한 때는 여러 매체에서 그녀를 오마주한 화보나 매거진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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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라는 단어. 사람 자체가 그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다니.
단어를 보기만 해도 굉장한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팩토리의 여왕으로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그 끝은 초라한 것을 보니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더 신비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저처럼 에디 세즈윅의 삶이 조금 더 궁금하신 분들은
그녀의 삶을 관조한 영화 ‘팩토리 걸’(Factor girl, 2006)을 살며시 추천드려 봅니다.
오늘의 레터 어떠셨나요?
저의 숨겨진 덕후 자질을 냉큼 들이민 것 같아 약간은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여러분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라 느껴졌어요. 여러분에게도 한켠에 숨겨왔던, 혹은 동경해 봤던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공유해 주세요-
다음 레터에서 만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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