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린입니다.
어느덧 2024년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12월이네요.
어떤 한 해를 보내셨나요?
그리고 어떤 연말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 한편,
화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다가올 내년을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마음 한편, 복잡스러운 마음이 커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요,
수식어로 많이 쓰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니다.
저희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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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 현장에 액자에 담긴 한 그림이 상단에 걸렸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Girls without balloon’.
어린 소녀가 풍선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그림으로, 가로 50cm 세로 70cm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작품이었습니다. 경매가는 순식간에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사회자가 망치를 두드리며 이 그림의 낙찰을 알렸는데요.
낙찰가는 무려 140만 달러, 한화로 18억 원이 넘어가는 가격이었습니다.
갑자기 경매장이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낙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액자에서 빠져나오며 갈려 나가고 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로 이 엽기적인 해프닝에 앞다투어 기사를 내며 큰 이슈 거리가 되었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이 모든 것은 그림의 작가인 ‘뱅크시(Banksey)’가 모두 계획한 일이었습니다. 다음날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이 장면을 업로드하며 말을 덧붙였어요. “Going, going, g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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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사전에 액자 내부에 파쇄 날을 설치했습니다. 때가 되면 그림이 갈려나갈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칼날을 설치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또한 그의 sns에서 공유되었습니다.
현장에서 그림은 절반정도 갈려나가다가 멈춰졌는데요. 사실 뱅크시는 절반이 아니라 끝까지 갈려지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러나 기계 작동의 오류로 미처 끝까지 갈려나가지 못한 것인데, 이것이 아쉬워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반만 살아남은 작품은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게 되면서 이후에는 1850만 파운드, 한화로 약 315억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재 낙찰되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뱅크시는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요?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인 뱅크시. 사실 그는 얼굴 없는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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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 작업 방식은 그래피티로, 주로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 및 기타 흔적을 남기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가 다니는 거리는 거기가 어디든지 그의 작업실이 되었던 것이죠.
사실 그래피티 작업은 원칙적으로는 범죄로 취급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세계 곳곳 어딘가에 작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sns에 공개적으로 발표하면, 그제서야 저희는 그것이 뱅크시의 작품이구나 알 뿐이었죠.
뱅크시는 그동안 자신의 작업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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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영국의 빈곤 도시로 지정되는 웨일스 지역에 뱅크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작품의 영상과 함께 “Season greeting” 이라는 인사말을 적었는데요. 얼핏 보면 한 소년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양팔을 벌리고 행복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안타까운 현실이 존재했습니다. 모퉁이 건너의 벽엔 불에 무언가가 태워지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소년이 맞고 있던 눈은 다름 아닌 공장에서 나온 부산물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그림이 그려진 웨일스 지역은 영국 최대 철강 공장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으로, 검은 연기와 잿가루로 주민들의 호흡기 문제가 다발적으로 호소되고 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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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중심의 빨간 표지판 위에는 군사용 드론으로 추정되는 비행기 3대가 나란히 그려져 있습니다.
이 또한 실제 영국 런던 교차로 거리에 설치되어 있던 표지판에 그려진 것으로, 뱅크시의 sns에 작품이 업로드 되자마자 주변 사람들은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는데요, 결국 1시간 이내에 정체 모를 두 남성에 의해 그림이 뜯겨지면서 훔쳐 달아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도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지역인 가자지구의 휴전을 촉구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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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뱅크시의 SNS에는 9개의 동물 연작 시리즈가 업로드 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런던의 중심지에 있는 런던 동물원 (London Zoo)의 주변 외곽에서 발견되었는데요.
동시다발적으로 공개된 작품들은 각각 도난되거나 훼손되는 이슈가 있었기에, ‘동물을 파괴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라며 일부는 동물원의 폐지, 혹은 반대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정치의 뜻을 담은 것이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과열되기도 했죠.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작품만 남기고 떠났기에 외부에선 추측만이 무성했어요. 뱅크시 작품의 보증을 담당한 회사는 단지 대중을 응원하는 의도를 담고 있을 뿐이니 지나친 해석을 자제해 달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논란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 있는 그래피티로 재치 있고 유쾌하게 풀어낸 것에는 여부가 없어 보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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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돈 많은 사람들끼리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작품의 의미 없는 경매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모두가 주목하는 경매장 단상에서 해프닝을 벌임으로써 미술시장에 반항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죠.
"누군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좋아 보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의 테러리스트가 된다.”
뱅크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술 테러리스트(the art terrorist)'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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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터 어떠셨나요?
이전까지만 해도 뱅크시의 작품들이 저에겐 블랙코미디처럼 유쾌하고 독보적이다. 정도로만 느껴졌는데요, 지금처럼 시끄러운 시국에서 다시 한번 뱅크시의 작품을 만나고 보니 유독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나은 세상을 위해 개인으로서 어떻게 힘을 내야 할까 고민되는 요즘. 뱅크시만큼의 영향력은 없더라도, 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개인'이 돼 보려고 합니다.
유달리 방법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요. 다음 레터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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