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에서 인간을 둘러싼 관계들 속 부여받은 역할을 제외한다면, 당신 자체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오덥니다. 당신은 제게 물었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저에 대해서요?’ 제가 되물었습니다. ‘네, 궁금합니다.’ 당신은 대답했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 라는 핑계를 뱉을까 하다 못내 삼키고 ‘저는.. 모순투성이예요.’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당신의 본질이 모순이라는 건가요?’ 다시 물음표 … (중략)
그리고 24년 7월, 양귀자 님의 <모순>을 읽었습니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고 말하덥니다. 익숙한 문장에 옛 노트를 꺼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출처 핀터레스트
<모순>은 주인공 안진진의 부르짖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인생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이 문장을 연신 부르짖으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꽤 낭만적인 문장이니까요.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다. 꼭꼭 씹어 삼켜봅니다.
진진에게는 같은 외모, 상반된 삶을 사는 엄마와 이모. 그리고 두 남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익숙한 듯 독특합니다. 숱한 감정을 담은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01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아버지처럼,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이다.’
02
‘낯설어 죽겠단 말이야. 왜 그렇지? 장우씨는 알아? 갑자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무서워.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고요. 사랑하면 이렇게 세상이 낯선거냐고…’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하다는 말은 솔직히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치는 사랑이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라니! 저에겐 비겁한 변명처럼 들렸어요. 그저 거기까지, 딱 그만큼만 사랑했을 뿐 아닐까요. 그리고 진진의 술주정. 낯설음. 아! 낯설음!
낯설음을 표현하는 작가 메레 오펜하임의 <Object (물체): 모피 잔의 아침 식사>, 1936, MoMA
저는 지금의 연인을 만나며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마주치곤 했습니다. 꼭 잡은 손과 으스러질 듯 진한 포옹은 설레기도 숨이 막히기도 했어요. 매일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저는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안겨 빠져나왔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감정은 낯설음이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 사랑의 끝과 내 세상을 묶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감정과 한바탕 울고 나면 간질거리는 미움이 씻겨지며 진해지는 관계. 그의 탓도 내 모자람도 아닌 그저 낯설었던 것뿐. 모순적인 나를 이처럼 정의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유명한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김국환 <타타타> , 1991
가사가 제 귀에는 이렇게 들렸어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다시, 21년도 4월로 돌아가볼게요. 누군가 제게 묻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여전히 같은 대답을 합니다. ‘저는 모순투성이예요.’ 다시, 24년입니다. 이 질문은 당신을 향합니다. 인간을 둘러싼 관계들 속 부여받은 역할을 제외한다면, 당신 자체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할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근사하기보다는 솔직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저의 모순이 당신에게 영감이 되었기를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