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이입니다!
지난 4월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쿠킹클래스를 들었어요. 저와 팀이 열심히 수확한 채소들입니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나요. 다시 건강한 식단을 시작해 볼까 해요.
여름이니까요 ☀️
요즘 여러분께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혹시 건강한 식단을 계획 중이라면 우리 함께 레시피를 공유해 보아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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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같은 질문을 3번 들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분명 작은 숫자일 듯한데, 그 어려운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조이님의 일, 그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득한 문장입니다. 최종 목표라니.
의미에 매이는 것을 즐기던 저는 미래를 꿈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지금을,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집중하는 것이지요.
이 지금이 쌓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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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 김환기는 파리에 머무는 지인에게 편지를 부쳤습니다. (형이라 부르던 그도 그림을 그리던 이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굳이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아… 뭐였더라…’ 천장을 멍하니 5초. 갸우뚱 거리는 이 모습도 글에 담기길 바랐어요.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나는 꼭 막혀 있소. 에스프리 • 마티에르 • 테크닉 • 색감까지도 꼭 막혀 버렸소. 이럴 때 여행이나 했으면 뚫릴 법도 하오만은 가까운 경주도 못 가오. 자꾸만 근시안이 되어가오. 자꾸만 시야가 좁아져 가는 것 같소. - 42p,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이 글을 마주 했을 때는 감사함이 차 올랐는데 오늘은 그저 공감이 됩니다.
‘자꾸만 근시안이 되어가오’
내 지금을 이보다 잘 적을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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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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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차용한 김환기 화백의 단색화입니다.
1960년대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이웃사촌이었고, 1964년 뉴욕으로 떠난 김환기는 8살 선배 김광섭을 유난히 따랐다고 해요. 여러 해 서신이 오가고, 1970년 김광섭 시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그렇게 김환기는 붓을 들었고, 점점화 시리즈가 탄생합니다.
두 거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보니 그림이 유난히 슬퍼지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그가 찍어 내린 것은 점이 아니라, 그리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바삐 흘러가는 일상에 옅어졌다가 이내 번지는 마음. 그게 크고 작은 점의 크기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혼자 버젓이 생각해 보는 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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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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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를 읽고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면 직관적 아름다움 너머의 이야기가 들려요. 지금이 확장됩니다. 앞서 일의 최종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지금에 집중하며 잘 살고 있다 믿었는데, 혹여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어요. 이 글을 적으며 저는 ‘지금을 확장하는 시야’, 즉 나의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관점은 안녕하신가요. 일과 일상을 좁게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요. 근시안을 살피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관점의 틈새에서 새로운 감동을 만나는 한 주가 되기를 응원할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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