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a Abramović: The Artist is present(2010), MoMA
지난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회고전인 ‘예술가는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가 3월부터 5월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되었습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탁자 하나와 마주 보는 의자 두 개가 놓여있습니다. 마리나는 발아래까지 감싸는 붉은 롱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건너편을 응시했죠.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이라면 누구든 의자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원하는 시간 동안 앉아있을 수 있었어요. ‘의자에 앉아 상대방을 바라본다’ 단순한 룰 외에 규칙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사람이 누구든 그저 침묵한 채 가만히 눈을 바라보았어요.
다큐멘터리 '아티스트가 여기 있다'
관객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강렬하며 도발적이라고 느꼈던 사람도 있고, 그녀의 눈을 응시하다 마침내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아티스트에게 위로받은 느낌이었다고 말하면서요.
그녀가 매일 7시간씩 전시장에 앉아있었던 시간은 총 736시간. 그때를 회고하며 그녀는 말했습니다.‘지옥 한복판에서 고요함을 만들기 위해 난 바위가 되어야 했다.’
너무 단순한 룰을 가진 퍼포먼스였기에 주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는데요. 궁금함, 의아함 등의 다양한 시선들 아래 어수선함 속에서도 퍼포먼스를 끌어가야만 했던 아티스트의 고군분투가 느껴지죠?
그러던 중 전시 오프닝 날, 한 창 퍼포먼스가 무르익고 고요한 분위기의 가운데 예상치 못한 관객이 찾아옵니다. 다음 관객을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관객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짓습니다.
그는 바로 그녀의 옛 연인이자 오랜 기간 여러 작품을 함께한 동반자였던 울라이었습니다. 긴 시간 감정의 동요 없이 퍼포먼스를 수행했던 그녀에게도 그와의 재회는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Marina abramović archive
그들은 10여분의 시간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죠.
이윽고 긴 시간 아무 행동 없이 침묵으로만 대화하던 그녀는 룰을 깨고 울라이에게 먼저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만의 세계로 들어가 긴 세월을 공유하듯 서로를 응시했습니다.
현장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치며 그들의 조우를 환호해 주었죠.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연인 시절, 그들은 다양한 작품을 함께 수행했습니다.
Rest Energy(1980) 정지된 에너지입니다.
남자는 활을 잡고 여성에게 겨눕니다. 여성은 지지대를 잡고 활이 향하는 반대편에 서있죠. 남자가 활을 놓치면 그 자리에서 여자는 즉사하게 될 것입니다.
Marina abramović archive
여러분은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활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듯 해 연인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 작품을 통해 관계 속의 ‘신뢰’, 혹은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이 아찔한 퍼포먼스는 4분 20여 초가량 지속됐습니다. 그녀는 이 퍼포먼스를 두고 시간이 영원히 정지된 것처럼 힘겨웠다고 회고했습니다.
The Lover, The Great Wall Walk(1988) 연인, 걷기입니다. 1988년, 그들은 함께한 오랜 시간을 뒤로하고 헤어지기로 합니다.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각자 걷기 시작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 이별하기로 한 것인데요.
마리나는 황해에서부터, 울라이는 고비사막에서부터 시작해 각자 2500km를 걸어 90일에 걸쳐 만나 포옹했습니다. 처음 이 퍼포먼스를 구상했을 때는 중간지점에서 만나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허가가 늦어졌고, 그 사이에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관계 사이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결혼을 위한 퍼포먼스가 이별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나와 울라이는, 헤어졌습니다.
이들의 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 그들의 조우가 이토록 특별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오늘 소개한 ‘예술가는 여기 있다.’ 퍼포먼스에서도 마리나는 관객과의 소통에 주목했죠. 단지 눈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